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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니에서 광한루까지, 남원 할매추어탕 이야기

ffp 2023. 4.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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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순천 선암사로 향하던 도로 위의 일이다. 이른 새벽 출발하여 피로가 극심했다. 생사를 오가며 희한한 맛의 졸음방지 껌을 3개나 씹고있던 나는 돌연 칼치기를 들어온 차량에 분노가 치솟아 순간적으로 껌을 지나치게 깊게 씹어버렸다. 전부터 아슬아슬했던 내 금니가 뽕! 하고 시원하게 빠졌다. (실제 뽕 소리가 나진 않았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하.. 추석 연휴 첫날인데. 사찰음식은 템플스테이의 큰 즐거움인데!!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나. 썩을 놈의 칼치기는 진작 사라지고 없었다. 

 

MBTI가 극 T인 나는 즉시 솔루션에 집중했다. 서둘러야 했다. 인근 치과들을 검색해 무작위로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이걸로 119에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고, 보건복지상담센터인 129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전주를 지나 순천으로 가는 길인데 오늘 영업하는 치과가 있을까요?" 상담원은 잠시 있어보라더니 전라북도 남원시의 효치과의원(전북 남원시 용성로 90 효치과, 백제의료)을 추천했다. 오전까지만 문을 연다고 했다. 계획에 없던 남원에 가게된 이유다. 

 

효치과 선생님은 친절했다. "연휴 기간 동안 음식을 먹을 수 있게만 해주세요." 나는 서울에 다니던 치과가 있으니 지금은 임시치료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시간만 넉넉했으면 신경치료를 받아도 되었겠다 싶을 정도로 꼼꼼한 치료를 받았다. 너무 고마워서 두유였나 음료수였나 뭔가를 사드리고 나왔다. 남원 하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춘향과 이몽룡, 광한루, 추어탕이었는데 이젠 효치과까지 추가됐다. 명의가 따로 없다. 엄지척!  

 

임시 재료로 때운 부분이 살짝 어색한 느낌은 있지만 뭘 먹기엔 충분했다. 어느새 잠은 달아나있었고 나는 배가 고팠다. '그래, 남원은 추어탕이지..' 남원 추어탕맛집을 검색하니 몇군데가 나왔는데 그중 할매추어탕(전북 남원시 요천로 1467 3대원조 할매추어탕)이 눈에 꽂혔다. 일단 갔는데 놀랍게도 광한루 바로 옆이었다. 왜인지 기억도 안나는데 마침 입장료도 무료라는거다. '금니가 빠진 것 치고는 썩 나쁘지 않은 전개인데..?'  

 

남원 할매추어탕 간판, 3대 원조의 맛이란다.
내가 갔을 때는 한산했던 할매추어탕집. 테이블마다 비닐을 깔아두었다.
남원 할매추어탕의 추어탕 한 그릇
남원 할매추어탕의 추어탕
남원 할매추어탕의 추어튀김

 

남원 할매추어탕의 추어탕은 한그릇에 12,000원이었다. 다른 메뉴가 뭐가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추어탕집에 갔으니 추어탕을 먹었는데 국물이 진해서 좋았다. 추어튀김도 서비스로 주셔서 맛있게 잘 먹었다. 미꾸라지와 쌀, 김치 모두 국내산이라고 해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주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서울에도 남원추어탕은 많다. 그 수많은 남원추어탕집들이 다 맛있는데, 남원 할매추어탕의 맛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서울의 경쟁은 더 치열하니까. 의정부 부대찌개, 전주 비빔밥, 마산 아구찜 같은 지역 원조들도 서울 맛집과 비비면 별 차이 없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그렇지만 남원 할매추어탕은 오래 기억날 것 같다. 금니에서 광한루로 이어지는 스토리 속에 단단하게 박혀있어서다. 마침 그날은 날씨도 너무 좋았다. 남원 할매추어탕을 생각하면 아름다웠던 광한루가 함께 떠오른다. 쨍하던 햇볕과 시원했던 나무 그늘, 추어탕 한 그릇에 기분좋게 배불러서 느릿느릿 걸었던 그 산책이 기억난다. 그런 것은 유일하고,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효치과 선생님도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남원 광한루원의 나무
남원 광한루원의 나무
남원 광한루원의 풍경
남원 광한루원의 달 모형
남원 광한루원의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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