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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차정숙 '미국 병원 vs 한국 병원' 비교

ffp 2023. 4. 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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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엄정화가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으로 돌아왔다. 의대 졸업 후 가정주부의 삶을 선택했던 정숙이 20년 만에 1년 차 레지던트로 복귀해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런데 4화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어느 기업 회장님이 건강검진을 위해 내시경을 했는데 "수술해야 할 상황이며 앞으로 장루를 달고 살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를 내다가 끝내 흐느끼는 것.
 
장루는 대변 배출을 위해 복부에 낸 구멍을 뜻한다. 장루를 달고 살 확률이 높다는 대사로 볼 때 내시경 검사 결과 항문과 인접한 직장에 암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직장암 치료 과정에서 항문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치료를 통해 종양의 크기를 최대한 줄인 후 수술하는 것이 유리하다. 또한 종양을 정교하게 절제할 수 있는 로봇수술로 항문보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다만 극중 회장님의 경우 전이가 많이 진행되었거나 종양이 항문 근육을 침범한 상황이어서 주치의가 영구장루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 같다. 
 
다시 차분해진 회장님은 치료를 거부한다. "수술은 뭔 놈의 얼어죽을 수술? 실력도 없는 것들이 어디서 개수작이야? 여기서 한 2~3일 쉬고 미국에서 제일 큰 병원으로 갈 거야, 무조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테니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차정숙 레지던트가 "저희 병원도 이쪽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이에요. 미국으로 가신다고 해서 더 나은 치료를 받으실 거라는 보장이 없어요"라고 설득해 보지만 그의 결심을 돌리기엔 역부족이다. 

미국에서 제일 큰 병원으로 갈거야, 무조건!


여기서 잠깐. 미국에서 가장 큰 병원이 어딜까? 미국 시사주간지 「U.S. 뉴스&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가 선정한 2022-2023 최고 병원 순위를 보면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암병원은 엠디엠더슨 암센터다. 「U.S. 뉴스&월드 리포트」는 미국의 913개 암병원을 평가하여 상위 50개 병원을 선정했다. 평가기준은 ▲결과 및 경험(Outcome & Experience) 48.2% ▲주요 프로그램, 서비스 및 직원(Key Programs, Services and Staffs) 15.7% ▲전문적인 인정(Professional Recognition) 36.1%이다.
 
거의 모든 세부항목에서 각 병원에 대한 평가값은 가공된 지표로 표현되어 있다. 다만 최근 3년간 암 관련 장애로 치료받은 고위험환자의 상대적 수(Relative volume of high-risk patients treated for cancer-related disorders over three years)는 절대값이 제시돼 눈길을 끈다. 특히 이 항목은 가장 비중이 높은 '결과 및 경험' 기준에 속해있어 더 의미 있다. 사실상 가장 직관적인 지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역시 수술별 진료량 지표를 공개하면서 "수술 경험이 많은 의사나 의료기관에서 수술을 받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수술결과 등 진료결과가 더 좋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제시한 바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U.S. 뉴스 &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가 선정하는 2022-2023 최고 병원 순위
2022-2023 미국 최고의 암병원 선정에 대한 안내



「U.S. 뉴스&월드 리포트」가 선정한 2022-2023 미국의 암병원 1~5위와 3년간 고위험환자수를 살펴보면 ①엠디앤더슨 암센터(University of Texas MD Anderson Cancer Center) 1위 - 13,187명 ②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 2위 - 6,496명 ③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 3위 - 4,527명 ④다나파버 암센터(Dana-Farber Cancer Institute) 4위 - 4,376명 ⑤UCLA 메디컬센터(UCLA Medical Center) 5위 - 1,942명이다. 미국의 암 전문의들에게 고난도 환자에게 가장 좋은 병원이 어디인지 설문하였더니 엠디앤더슨 암센터가 가장 높은 응답을 얻었고,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가 그다음 차례였다. 
 
회장님이 엠디앤더슨 암센터에 가면 항문을 보존할 수 있을까? 결국 종양의 위치와 전이 경과에 달렸다. '닥터 차정숙'의 배경인 구산대학병원은 국내 빅5급 상급종합병원을 묘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 촬영은 세트장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환자 수가 가장 많은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은 2022년 한 해동안 22,354건의 암수술을 시행했다. 이중에는 상대적으로 중증도가 낮은, 이른 병기의 환자도 다수 포함돼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3년간의 환자 수를 카운트한다면 「U.S. 뉴스&월드 리포트」 평가에서의 고위험환자 기준을 보수적으로 높게 잡아도 어깨를 견줄만한 수준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대장암은 폐암, 간암 다음으로 발생률이 높아 더욱 그렇다. 가상의 상황을 두고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긴 한데, 결론적으로는 회장님이 굳이 미국까지 갈 실익이 없다는 이야기다. (장루를 하더라도 미국에서 해야 최선을 다했다는 기분이 든다면, 물론 그건 본인의 자유다.) 
 
그보다는 의사가 환자의 몸 상태를 정확히 설명해주고, 환자의 감정에 공감해 주어야겠다. 또한 비록 희박한 확률이더라도 항문 보존을 위해 어떻게 최선을 다할 것인지 구체적인 치료계획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엠디앤더슨은 멀어도 서울아산병원은 가깝다. 서울의 큰 병원에 우리나라의 중증환자 대부분이 몰리는 이유일 텐데 이를 누가 탓하랴. 요즘 서울아산병원은 진료 예약도 어렵지만 진료 후 검사도 수개월씩 기다려야 한다. 검사결과에 따라 수술이 필요해도 입원이 쉽지 않다. 서울대학교병원, 삼성서울병원은 상대적으로 훨씬 빠른 일정이 가능하다. 어느 병원이 실력 있는 병원인지 환자들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아산병원이 엠디앤더슨 암센터와 대등한 수준이라고 하면 지나친 국뽕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격차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최고의 암병원으로 꼽히는 엠디앤더슨 암센터 ⓒMD ANDERSON CANCER CENTER
2022년 한해동안 22,354건의 암수술을 시행한 서울아산병원 ⓒ서울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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