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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송광사 사이에 있는 조계산 보리밥집원조집

ffp 2023. 4. 1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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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 보리밥집원조집(061-754-3756/ 전남 순천시 송광면 굴목재길 247)을 다녀온 후기를 포스팅한다. 지난해 순천 선암사에 템플스테이를 갔을 때 근처 ‘조계산 보리밥집’에 다녀와보라는 추천을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절 문을 나섰다.

선암사에 템플스테이 가서 머물렀던 방


아니 그런데, 보리밥 먹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보리밥집은 선암사와 송광사 사이에 있는데 천년불심길을 통해 큰굴목재까지 오르막길을 오른 후 보리밥집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거리는 그다지 길지 않은데 길이 정말 험했다. 가는 길에 호랑이턱걸이바위라는 절벽이 나왔는데 정말 옛날에는 호랑이가 나왔을 것 같았다. 조계산은 서울 인근의 다른 산들처럼 길이 잘 정비돼있지 않고 울퉁불퉁해 발바닥이 아팠다. 벌레들까지 성가시게 달라붙어서 “밀짚모자를 챙겨가라”시던 스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평소 등산을 즐겨 다니는 나에게도 보리밥집 가는 길은 너무 고되었다. ‘이렇게 고생하고 먹으면 맛없기도 힘들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혹시라도 그걸 노려서 이곳에 식당을 차린거라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ㅎㅎ

조계산 도립공원 안내도
선암사에서 조계산 보리밥집원조집까지 가는 길. 말그대로 산 속에 있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향하는 천년불심길
누군가 큰 돌에 글씨를 써놨다.
조계산 도립공원 안내도
자연이 만들어낸 풍광은 언제나 아름답다



마침내. 말 그대로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그곳엔 보리밥집이 두군데가 있었다. 하나는 원조집, 하나는 아랫집이었는데 어딜 가야 하나 열심히 검색하고 고민했다. 너무 힘들어서 아무 데나 가야지 싶다가도, 아무래도 내가 여기 다시 오는 건 다음 생에나 가능할 것 같아서 신중하게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건의 포스팅을 읽어보고 비교한 끝에 원조집으로 향했다. 맛은 모르겠지만 일단 식당의 분위기는 원조집이 더 마음에 들었다. 

조계산 보리밥집원조집 가는 길에서 만난 호랑이턱걸이바위
조계산 보리밥집원조집 전경
조계산 보리밥집원조집 마당의 평상
조계산 보리밥집원조집 메뉴판 이미지

메뉴는 보리밥(8.0), 도토리묵(8.0), 야채파전(10.0), 동동주(7.0), 솔잎주(7.0), 소주(4.0), 맥주(4.0), 음료수(2.0), 생수(1.0)으로 심플했다. 이날 카드를 놓고 가는 바람에 계좌이체로 처리했는데 다행히 네트워크는 문제없이 잘 연결됐다. 마음 같아서는 보리밥에 도토리묵에 야채파전 모두 다 시켜서 우왕우왕 먹고 싶었지만, 템플스테이 중이었던 터라 극도의 자제력을 발휘하여 보리밥 한상만 주문했다.    
 
보리밥과 여러 나물을 고추장으로 쓱쓱 비벼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었더니 너무 행복했다. 앙증맞은 양으로 내어주신 반찬들도 하나같이 다 맛있어서 냠냠 음미하며 먹었다. 마실 물을 따로 내어주지 않길래 생수를 한 병 사서 마셨다. 이름하여 맑은샘 지리산! 분명 생수인데 꿀맛이었다. 가족들과 이 보리밥을 같이 먹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이 힘든 길을 따라올 리 없겠지? 나도 당장 선암사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송광사에 가서 택시든 버스든 탈까 잠시 망설이다가 큰굴목재 방향으로 발을 뗐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처음부터 느릿느릿 걸었더니 걱정했던 것보단 쉽게 왔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가 차니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 걸까? 도토리 떨어지는 소릴 듣고 행복해했던 나름 낭만적인 길이었다.
 
솔직히 직장 근처 식당에서 야채비빔밥을 먹어도 비슷한 맛일 것 같다. 하지만 초고수 쉐프가 정성껏 라면을 끓여도 '군대에서 먹었던 라면'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그날 그 고생을 하고 먹은 보리밥'은 내 일생을 통틀어 유일할 수밖에 없다. 무려 호랑이턱걸이바위 씩이나 등장하는 스토리텔링이라 이길 수가 없는거다. 그런 기억은 한번 뿐이면 족한 것 같다. 다시 사진을 찾아보니 그곳에 또 가보고 싶어지지만 생각만으로 끝내야지~ ㅎㅎ  
 

조계산 보리밥집원조집 평상 위에 차린 보리밥 한상
지금 사진을 다시보니 쓱쓱 비벼 입에 다 털어넣는데까지 3분컷 가능해보인다.
"그래, 이맛이야"하는 그런 맛.
꿀맛 나는 생수, 맑은샘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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